용두리주택 / '오프쇼어' 커피공방 - Prologue
// 2022, 충청북도 청주시
계획설계, 기본설계, 실시설계, 시공감리
//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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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 단독주택 / 커피브랜드 '오프쇼어' 로스팅작업실 & 테이크아웃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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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면적: 659.9 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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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면적 : 170.39 m2 / 연면적: 170.39 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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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 경량목구조, 스타코, 알루미늄징크지붕, 알루미늄시스템창호, 오크집성목, 원목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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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일: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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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공사비 : 약 4억 8천만원
// Prologue
용두리집을 지은 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건축주 부부는 빠듯한 공사비 탓에 일단 건물 준공부터 하고, 식수는 시간을 두고 하나씩 직접 하기로 했었다. 아직 정원이 갖추어지지 않아 집이 미완성으로 보였던 탓에 준공촬영도 차후로 미루어졌다. 그 대신 나는, 준공 당시 집의 여러 모습을 내 작은 미니아이폰에 담았다. 곳곳마다 담겨있는 지나간 내 고민들의 흔적을 떠올리며.
건축주 부부는 준공 이후 시간 날 때마다 정원을 조금씩 가꾸었다는 소식을 나에게 전해왔다. 내년 봄이 지나면 아마도 고대하던 준공촬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아름다울 계절을 기다리는 동안, 내 미니아이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하나씩 꺼내 놓으며, 용두리집에 대한 작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이곳에 차곡차곡 담길 이 집 식구들의 긴 이야기에 비하면 아주 짧은 프롤로그이다.
새 건축주를 만났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 작업을 통해 얻은 느낌과 원칙을 갖고, 나는 그의 일상, 개성, 꿈, 미래를 담을 수 있는 장소를 상상하고 현실화하는 긴 항해를 시작한다. 건축주와의 각 만남과 순간의 상황들에 대한 기억, 느낌, 기록 등은 나에게 순조로운 항해를 위한 좌표 지도와 같은 것이다.
하늘이 청명했던 어느 날, 저널에 소개된 사암리주택을 마음에 들어 한 젊은 부부가 내 사
무실을 방문했다. 밝고 따듯한 인상의 두 분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왜 이분들이 사암리주택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암리주택은, 겉치레와 작위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주거공간’이 가져야하는 기본을 중시하는 속에서 건축적 미와 지속적 가치를 추구했던 작업이었다. 소박하고 성실하며 실용적으로 사고하고, 꿈이 많고 캠핑과 야외활동 애호가인 부부는 그런 사암리주택을 닮은 분들이었다. 그리고 좋은 집은 좋은 설계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갖고 찾아온 건축가에게 전적으로 신뢰를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예산은 넉넉치 않았지만 건축주 부부는 부모님 댁 근처에 장만한 대지에 가족의 새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어했다. 두 분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고 진지했다:
밝고 편안한 내부 공간,
어린 아들이 친구들과 마음껏 놀고 온 가족이 테니스와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넓은 마당,
가족, 친구 간 모임을 원 없이 가질 수 있는 양지 바른 테라스,
그리고 부부가 운영하는 커피브랜드 ‘오프쇼어Offshore’의 로스팅작업실과 테이크아웃숍을 같은 대지로 이전하고 싶어 했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텐트를 친 해변 모래사장 너머 펼쳐진 눈부신 바다, 수평선, 하늘, 그리고 비틀즈의 ‘Abbey Road’ 앨범과 비치 보이스의 서프 음악을 떠올렸다.
단독주택과 커피공방으로 구성된 용두리집은 다음 기본계획에 따라 설계되었다:
첫째, 주택과 커피공방을 두 동으로 명확하게 분리한다. 공적영역인 커피공방은 대지 남측 주도로변에 두어 인지성, 접근성, 홍보성을 높이고 건물 전체가 하나의 광고체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반면 주택은 가족의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해 커피공방의 정반대쪽인 대지 북측에 배치한다. 두 동 간 거리를 최대로 두어 미래에 사업규모 확장 시 커피공방의 증축이 용이하도록 한다.
둘째, 주택과 커피공방 사이에 각각 놀이와 모임을 위한 두 마당을 배치하여 집 전체의 중
심공간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두 마당 간에 단 차이를 두어 기능적 구분을 두고 남북축으로 약간의 경사지인 대지에도 대응한다.
셋째, 넉넉치 않은 예산을 고려하여 공사비가 절감되는 경골목구조, 단층, 스타코 마감을 건물에 적용한다. 경골목구조는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환경친화적이고 실내공기오염이 적으며 단열성능이 뛰어나서, 온 가족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거용 건물에 특히 적합한 구조이다.
넷째, 담장을 두 동의 연결, 길과 마당의 구분, 정원수의 배경 그리고 차경을 위한 장치로 활용한다. 이 집에서 담장은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건물과 하나를 이룬다.
놀이마당는 다른 색으로 계속 덧칠할 수 있는 캠버스와 같다.
테니스 네트, 공받이 주머니, 노란 공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가 사라지고,
떡하니 등장한 초대형 수영장 주위로 물바다였던 바닥은 어느새 보송보송 말라 있고,
바닥에 가득하던 어린 아들의 분필 낙서는 이제 도대체 뭘 그린 건지 알 수가 없고,
마당을 가득 채우다 못해 집안까지 울려 퍼지던 놀이꾼들의 고함소리는 이제 귓속 여운으로 남아있다.
두 동그라미에 나무가 심어지면 나무 주위로 뺑뺑돌기 놀이까지 가능할지도 모른다.
확 트인 하늘 아래 따듯한 햇살로 가득찬 윗마당에서, 외부인의 시선 없이 가족과 함께 먹는 음식은 정말 꿀맛이다. 비싼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자리가 이보다 더 행복할까?
콜라 한잔 마시며 놀이마당에서 장난치느라 정신없는 놀이꾼들을 내려다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가족은 또 하나의 작은 사회이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거실은 집 안의 사회적 영역이며 그곳에 손님을 맞이할 때 사회적 영역은 확장된다. 작은 면적이지만 경사지붕 밑 층고를 최대로 활용하여 여유있는 공간감을 살린 거실은 용두리주택 내부의 구심적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마당에 면한 남측 창들을 통해 가득 들어오는 따듯한 햇살은 돌출 처마에 의해 한풀 꺾여 들어와 자극적이지 않고 온기와 정을 나누는 이 공간과 잘 어울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은 유대 증진을 위해 필수적인 만큼, 거실은 아일랜드 식탁을 사이에 두고 부엌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수목이 가득한 뒷언덕에서 부엌 창으로 들어와 거실을 거쳐 마당으로 흘러가는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수목이 우거진 뒷언덕을 향해 난 부엌 창은 사계절 내내 변화하는 하나의 그림 액자와 같다.
또한 이 액자는 동일한 중심축을 따라 연속적으로 배치된 프레임 중 하나이다. 마당과 거실 간 창도어, 거실과 부엌 간 벽개구부, 부엌과 뒷언덕 간 창으로 구성된 세 개의 프레임은 프레임 안에 또 다른 프레임이 보이도록 하여 공간의 확장을 경험토록 한다.
움직임이 향하는 곳에 빛과 기대되는 공간이 보일 때 동선공간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유쾌한 경험의 장소가 된다.
진짜 고급스러운 옷은 보이지 않는 안감이 예술적인 법이고, 진짜 패션을 아는 사람은 안감의 가치에 매료되는 법이다. 안감은 옷 이면에 감춰져 있다가 옷을 풀거나 벗을 때 비로소 그 멋스러움을 드러내 보는 사람을 감탄시키며, 안감이 얼마나 촉감 좋고 기능적인지는 옷을 입어봐야 알 수 있다.
용두리집에도 작고 보이지 않는 실들이 있다. 소박함 속에 멋스러움과 기능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공간이다. 옷이든 집이든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직관적으로 알 수 없으며 시간을 두고 접해봐야 알 수 있는 법이다.
용두리집으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는 커피브랜드 ‘오프쇼어Offshore’의 커피공방은 아직 고요하다.
때가 되면, 공방 안 불이 켜지고, 커피 그라인더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로스팅 냄새가 코 끝에 맴돌고, 덩굴식물이나 어닝으로 덮힌 야외테라스도 커피와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채워질 것이다. 담장 위로 고개를 쳐든 정원수들의 모습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보이지 않는 마당에 대한 궁금증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건축주 부부는 커피공방이 이전되면 공방 앞과 야외테라스 주변을 멋스러운 화분들로 꾸미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건축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시간이 필요하다. 용두리집이 이곳 식구들과 공방 손님들의 손길과 흔적으로 어떻게 채워지고 변해갈지가 궁금해지는 이유이다.